“아버지는 아직도 막내딸을 기다려” 광주 학동 ‘붕괴 사고’ 석달 지났지만 유족의 시간은 그대로 (사진)

연합뉴스 (이하)
2021년 6월 9일, A 씨는 아버지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. 암 수술 이후 요양병원에 있는 엄마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.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‘지금 출발한다’는 문자를 보냈지만 싸늘한 주검이 돼 어머니 품으로 돌아왔다.
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져 내려 A 씨가 타고 있던 버스를 덮친것이다. A 씨를 포함해 9명이 숨지고, 8명이 크게 다쳤다. 사고가 일어난지 석 달이 지났지만, A씨의 가족들은 여전히 참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. A씨의 언니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막내 동생을 떠올리고, 어머니는 답장 없는 문자 메시지로 안부를 물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다.A 씨는 다섯 자매 중 막내로 사고 당일 아버지와 함께 버스에 탔다. 아버지는 버스 앞쪽에 앉았고 A 씨는 뒤쪽에 앉았다. 아버지는 극적으로 목숨을 구했지만, A 씨는 그대로 숨졌다.
아버지는 큰 소리가 나더니 두 무릎 사이로 고개가 고꾸라졌다고 사고 당시를 회상했다. 그는 구조되는 순간까지 “막둥아”를 부르며 A 씨를 찾았지만 끝내 대답을 듣지 못했다. 동물을 좋아했던 A 씨는 수의대로 편입을 준비하고 있었다.토익 980점을 받을 만큼 공부도 잘한것으로 알려졌다. 암 수술 후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편입 준비를 스스로 미룰 정도로 착한 동생이었다고 한다. A씨의 언니는 “막내가 ‘언니 내가 공부는 나중에 할 수 있지만, 엄마를 이렇게 보살필 수 있는 시기나 기회는 없을 것 같다’고 ‘공부는 나중에 하면 된다’고 했다”고 말하고는 했다고 전했다. 하지만 언니들과 부모님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던 현명하고 똑똑한 막내는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났다.
A 씨의 어머니는 참사 이후 광주를 떠났다. 평생 삶을 일궈왔던 곳이지만 눈길,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막내딸이 아른거려 어쩔 수 없는 선택을했다. 낯선 도시로 온 어머니는 온종일 버스를 타고 배회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.
A 씨의 아버지는 참사로 갈비뼈 10개와 허리등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고 10시간 가까이 수술을 받고 현재는 요양병원에 있다. 최근엔 의사로부터 사고 후 충격으로 ‘외상성 치매’ 소견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. 처음 가족들은 아버지에게 막내딸의 죽음을 숨겼다. 차마 사실대로 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.
그러나 뒤늦게 막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접한 아빠는 모든게 무너졌다. 아버지에게 있어 자신의 몸이 회복되는것보다 더 바라는건 죽은 막내딸이 살아 돌아오는 것이었다. A씨의 아버지는 “우리 막둥이를 앞으로 볼 수가 없다는 것, 그것 외에 내 몸이야 상관없다. 그것 외에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”고 말했다. A 씨의 언니도 “매 순간, 매 공간 동생이 생각난다”며 “몇천억, 몇백억,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원하는 건 동생이다”고 토로했다.마지막으로 유족들은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이번 참사의 관계자들에 엄중한 처벌을 해달라 강조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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